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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제로·에너지 플러스… 보봉마을의 ‘그린 혁신’

2026-06-02 오후 11:46:55

?직접 발을 디딘 보봉 마을은 ′도시가 거대한 하나의 생태계로 살아 숨 쉰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과거 프랑스군이 주둔하며 삭막한 철제 군사기지와 차가운 콘크리트 건물로 가득했던 곳이었다는 것을 믿을 수 조차 없을 만큼,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보봉(Vauban) 지구는 이제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장 싱그럽고 깨끗한 친환경 생태도시로 대전환에 성공했다. 매연을 내뿜는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탄 주민들이 여유롭게 스쳐 지나갔고, 건물 벽면과 발코니를 가득 채운 녹음은 과거 군사기지였다는 흔적을 완전히 지워내고 있었다. 삭막했던 군사 요충지가 어떻게 세계 최고의 친환경 낙원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을까? 그 혁신의 현장을 세 가지 핵심 키워드로 짚어보았다.

쓰는 에너지를 넘어 ′버는 에너지′로, 플러스에너지 하우스

보봉 마을 주택들의 가장 큰 특징은 에너지를 단순히 절약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생산해 수익을 창출하는 ′플러스에너지 하우스(Plus-Energy House)′를 구현했다는 점이다. 마을의 모든 건축물은 패시브하우스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했다. 3중 창호와 두꺼운 친환경 외벽 단열재를 도입해, 외부로 빠져나가는 열을 철저히 차단함으로써 난방 에너지 소비를 기존 주택 대비 70% 이상 획기적으로 절감했다. 주택의 지붕과 발코니에는 예외 없이 태양광 패널이 촘촘하게 설치되어 있다. 프라이부르크의 풍부한 일조량을 고스란히 흡수하는 이 패널들은 매일 엄청난 양의 친환경 전력을 쉴 새 없이 뿜어낸다. 이곳에서 생산된 전력은 마을 주민들이 일상에서 가전제품을 쓰고 불을 밝히기에 차고 넘칠 만큼 풍부하다. 주민들이 일상에서 충분히 사용하고도 남은 잉여 전력은 버려지지 않고 지역 전력회사로 고스란히 송전되어 되팔린다. 매달 주민들의 통장에는 ′전기요금 고지서′ 대신 ′전력 판매 수익금 명세서′가 날아든다. 에너지를 소비하던 주체에서 생산자(Prosumer)로 거듭난 주민들은 환경을 지킨다는 자부심과 함께, 매달 든든한 경제적 보너스까지 챙기며 탄소중립의 혜택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도시의 열을 식히는 생명의 줄기, 인공천 ′베흘레(Bachle)′와 녹지대

마을 중심부로 걸음을 옮기면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귀를 사로잡는다. 프라이부르크의 명물이자 보봉 마을의 핏줄 역할을 하는 소형 인공 수로 ′베흘레(Bachle)′다. 과거 콘크리트 바닥이 뿜어내던 복사열은 사라졌다. 마을 곳곳을 흐르는 베흘레는 한여름 도심의 열섬 현상을 완화하는 천연 에어컨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주민들과 아이들은 수로 가에 앉아 발을 담그며 자연 친화적인 쉼터를 만끽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베흘레 보트′라는 배 모양 장난감을 천에 띄우고 마을 한 바퀴를 돌기도 한다. 보봉 마을에는 빗물이 고여 썩거나 그냥 버려지는 일이 없다. 바닥은 빗물이 그대로 흡수되는 투수성 보도블록으로 포장되어 있고, 건물 옥상은 풀과 이끼가 자라는 옥상 녹화(綠化)를 적용했다. 이렇게 머금어진 빗물은 지하수로 유입되거나 조경수로 재활용되는 완벽한 자연형 물 순환 체계를 이룬다.

보봉 마을을 관통하는 친환경 교통수단인 트램(노면전차) 선로 바닥에는 딱딱한 콘크리트나 자갈 대신 싱그러운 푸른 잔디가 융단처럼 깔려 있다. 이 잔디 선로는 단순히 보기만 좋은 것이 아니다. 트램이 달릴 때 발생하는 철제 마찰 소음을 획기적으로 흡수해 마을을 도서관처럼 정숙하게 유지해 주며, 콘크리트 바닥이 태양열을 받아 달궈지는 것을 막아 도시의 열 발생을 크게 낮춰주는 냉각 효과까지 낸다. 미세먼지를 잡고 도심 미관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은 덤이다.

친환경 교육 거점, 외코스타치온

보봉 마을의 성공은 단순히 뛰어난 기술 때문만은 아니다. 마을 중심에 자리한 친환경 교육 거점 공간은 주민들의 생태적 삶을 지탱하는 단단한 뿌리다. 교육 공간 건물 자체도 하나의 거대한 친환경 교과서다. 교육 공간 내부에는 흔한 플라스틱 책상과 의자조차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화학 자재를 배제하고 황토, 나무, 재생 종이 펄프 등 천연·재활용 자재만을 활용해 지어져 건물 자체가 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순환하는 구조를 보여준다.

이곳에서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친환경 에너지 활용법과 생태 교육이 끊임없이 열린다. 이곳의 교육은 책상 위 지루한 이론에 머물지 않는다. 아이들은 일회용품을 땅에 묻은 뒤 몇 년 후에 파보며 플라스틱이 얼마나 오랜 시간 썩지 않고 자연을 괴롭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한다. 또 집에서 직접 쓰던 샴푸를 가져와 화학 성분이 강과 바다로 흘러갈 때 수질에 어떤 치명적인 오염을 일으키는지 실험하며 환경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깨닫는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환경의 소중함을 배우고, 어른들은 탄소중립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방법을 토론한다. 관(官) 주도의 일방적 정책이 아닌, 주민 주도형 탄소중립 문화가 이곳에서 싹트고 있었다.

독일 보봉 마을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명확하다. 지금까지 우리의 친환경 도시 정책은 개별 건물의 단열을 높이거나 태양광 패널을 지원하는 ′단포성 리모델링′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하지만 보봉 마을은 달랐다. 에너지 자립 주택이라는 하드웨어에 베흘레와 같은 생태 인프라, 그리고 주민들의 의식을 바꾸는 환경 교육(소프트웨어)이 유기적으로 결합될 때 비로소 진정한 ′그린 타운′이 완성된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기후위기 시대, 대한민국의 도시 재생 사업이 나아가야 할 진정한 이정표가 바로 이 초록빛 보봉 마을에 있다.